갈리폴리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협상국이 독일 제국의 동맹국으로 참전한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서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해서 벌어졌다. 1981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2025년 4월 25일 새벽 5시 30분 호주의 멜버른에서는 안작 데이 11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1915년 4월 25일 갈리폴리(Gallipoli) 상륙작전 개시 시각에 맞춘 행사로 영국 왕실 인사를 비롯해 호주 총독과 참전 용사 후손들이 참석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약 260km 떨어진 갈리폴리 반도에서 벌어진 상륙작전을 계기로 결성된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ANZAC;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의 작전을 기념하고 전몰자를 추모하는 행사다.

전투는 약 8개월 후 끝나고 1916년 1월 9일 제1차 세계대전 최대 상륙작전인 갈리폴리 원정이 끝났다.

연합국과 튀르키예 양측에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ANZAC 연합군을 태운 군함이 튀르키예를 떠났다. 6만여 명의 호주 병사들이 전투에 참전해 약 8000명이 전사하고 약 1만8000명이 부상했다.

호주는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1950년 6월 29일 전투병 파병을 결정해 9월 17일 선발부대가 부산에 도착했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안보위협도 배경이 되었다.

1942년 5월 일본의 파푸아 뉴기니 점령시도는 산호해 해전에서 패배로 실패했다.

그러나 7월 2차 공격으로 일본군은 포트 모레스비 50여 km까지 접근했다. 호주 주둔 맥아더 장군의 방어작전이 성공해 대일본제국 건설의 꿈은 실패했으나 다윈 Darwin 시(巿)까지 폭격받은 호주의 불안감은 컸다.

호주가 ANZAC day를 기념하는 이유는 최초의 해외파병이며 뉴질랜드와의 연합군 결성이지만 단일 전역에서 많은 사상자를 낳은 전투였던 사실도 크다. 좁고 낮은 불리한 상륙지점 공간에 많은 병력이 밀집했고 영국군과 호주군 지휘부 간의 작전 지휘 상의 오류가 실패를 만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호주 영화 '갈리폴리'는 이런 상황에서 튀르키예군의 기관총 앞으로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는 호주 병사들을 묘사했다. 호주 배우 멜 깁슨은 뒤늦게 내린 돌격 취소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려가는 연락병으로 출연해 당시 전투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영화는 호주의 청정한 자연처럼 순수한 호주 청년들의 모습을 그렸다. 전쟁처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성찰할 점을 알려주는 교훈은 없다.

수많은 개인의 미시사와 국가의 거시사가 교차하는 갈리폴리 전역처럼 한국의 경우에도 이 땅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