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길 아들 옷이 젖지 않도록 비닐 봉투에 넣어 데리고가는 아버지.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지만 대부분 개발도상국은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전체적인 국가 역량은 부족하지만 미개발 천연자원이나 젊은 인적자원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간의 유대나 국가발전을 위한 사회적 연대감이 강한 것이다. 배움에 열정을 지닌 자녀들과 이들의 교육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들과 같다.
개발도상국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과 현지인 직원들은 대부분 친밀하게 지낸다.
그러나 문화 또는 성격 차이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과거 어느 국가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다. 저녁 늦게까지 남편이 소식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신고 전화가 왔다. 현지에서의 근무시간은 오후 4시경이면 끝난다.
저녁 9시가 되어서도 소식이 없다면 사고가 난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여러 곳에 확인해보고 경찰에 신고한 후에 자정 무렵에 파악된 남편의 소재는 시내 경찰서 유치장이었다.
경찰서에서 들은 설명은 이러했다. 현지인 직원 한 명이 게을러 화가 나있던 차에 감정적으로 말대꾸를 하기에 홧김에 가볍게 머리를 한 대 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지인 직원의 신고로 퇴근길에 경찰에 체포되어 가족과 동료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구속 상태가 된 것이다. 조사과정에서도 한국인 직원은 부인했으나 현지인 직원은 그가 평소에 자신과 현지인들을 열등 민족으로 대했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한국의 국력이 신장되어 다른 나라로부터 질시나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되도록 양보하는 미덕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체접촉을 매우 꺼리는 것과 같은 문화적 차이를 서로 인정할 필요도 크다. 결국 마주 앉아 길게 솔직한 대화를 나눈 후에 두 사람은 오해를 풀었고 직원은 석방되었다.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침략을 경험했고 식민지 치하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나라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자격지심이 생기기 쉽다.
따라서 과거에 이들 국가와 유사한 역사를 경험한 한국으로서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마음과 물질의 아량을 갖고 생활하고 일할 필요가 있다.
칭기즈칸이 했다는 “새끼 늑대를 희롱하지 마라, 언젠가 큰 늑대로 자라서 물 수 있다”라는 말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경청할 교훈이다.
침략 전쟁의 역사가 남긴 후과는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영향을 준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전쟁 참전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감사와 지원은 해당국가에 대한 협력정책에 반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