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 신궁(伊勢神宮)은 미에(三重)현 이세(伊勢)시에 있는 황대신궁(皇大神宮)과 풍수대신궁(豊受大神宮)의 총칭. 전자를 내궁(內宮), 후자를 외궁(外宮)이라고 하며, 양궁을 합쳐서 이세대신궁, 대신궁, 이소대신궁 등으로 불렀다. 현재에는 신궁을 정식의 명칭으로 하고, 일반적으로 이세신궁이라 부르고 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일본은 강한 나라다. 국가 '기미가요(君が代)'의 가사처럼 “모래알이 뭉쳐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끈질긴 노력과 단결로 국가공동체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에게도 육체와 정신의 강한 단련을 주문한다.
과거 일본열도의 거주조건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화산과 지진 그리고 태풍의 피해가 잦고 부족한 농토에 식량 생산이 부족해 음식 도둑을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섬으로서의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대륙진출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198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는 고려장과 비슷한 일본의 노인 유기관습을 주제로 했다.
식량부족으로 늙은 부모나 어린 아기를 버렸던 과거의 설화를 극화한 것이다.
자연재해의 대비와 많은 전쟁을 수행한 경험으로 일본인의 전략적 사고방식은 생활에 배어 있다.
학교와 사회에는 지식정보의 습득과 교류를 위해 벤쿄카이(べんきょうかい, 勉強会)로 불리는 공부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그리고 안전과 규칙,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배려 문화가 발달했다.
일본인들은 자연환경의 약점을 인간의 노력, 그중에서도 정신력을 강조해 극복하려고 했다.
7세기 쇼토쿠 태자는 일본을 화(和)를 중시하는 공동체로 육성했다. 일본열도에 도래한 여러 계통의 세력 간의 충돌을 막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헌법 17개조를 반포했다.
완전한 인간은 없으며 모두가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니 화의 정신으로 개인의 독단을 삼가고 단체에 따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 능력의 조합을 통해 국가의 힘을 키우려고 했다.
근대 일본의 국운은 일장기의 의미인 욱일승천처럼 상승했으나 50년 정도의 기간에 그쳤다. 더구나 수차례의 침략전쟁으로 일어선 것이었고 1945년 8월 원폭 피해와 함께 패전으로 끝났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성공 시기가 끝나고 남은 후과는 주변 국가들과의 악연을 만들고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일본인의 정신적 고향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가 보면 혼자 방문한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침묵 속에 손을 모으고 무언가 서원을 하고 돌아간다. 소란한 단체여행이 아닌 개인만의 신앙심 속에 정신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일본은 정성과 노력을 핵심으로 하는 장인정신을 중시하고 국가공동체의 역량을 최대치로 올리기 위해 인화를 강조했다.
노력과 인화를 통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씨름의 천하장사격인 스모의 오제키를 차지한 선수는 우승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노력이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