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오전 07:50 (하와이 현지 시각) 일본해군 연합함대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영화 진주만)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일본의 전략전술 마인드는 기원 후 3세기경 인물로 추정되는 신공황후가 전투에서 적군을 속이는 장면에도 등장한다.
신공황후의 군대는 중애왕의 아들 형제 왕자 군대와 대치 중일 때 기만전술을 썼다. 우리가 싸울 이유가 없으니 모두 활시위를 끊고 칼을 던져 버리고 화해하자고 종전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먼저 활시위를 끊고 나무로 만든 가짜 칼을 물에 던졌다. 그러자 형제 왕자의 군대도 똑같이 무기를 던졌다. 그러자 신공황후 군대는 모자 속에 감췄던 활시위를 매고 진검을 꺼내서 중애왕의 아들 형제 왕자 군대를 전멸시켰다.
이런 기록을 봤기 때문인지 한일 간의 고대 미술문화를 비교하는 논문을 여럿 발표한 미국인 학자 존 카터 코벨은 자신은 일본인을 좋아하지만 신뢰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을 당했던 미국인으로서 이러한 인식을 더 하게 했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시차를 이용해 공격이 끝난 후에 선전포고를 전하면서 기습공격을 호도했다. 코벨은 일본 미술사를 전공 후에 1980년대 한국에 9년간 거주하면서 고미술과 유물을 연구했다.
세계 주요 강국들은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들이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전쟁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종전까지 일정한 목적과 계획을 갖고 주도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전략가와 군사학자들을 배출했다. 정규군 장교를 육성하는 사관학교뿐만 아니라 사설 군사학교도 운영되고 있다.
일본도 오랜 전국시대를 보내면서 대외전쟁 못지않게 많은 내전을 벌였다.
따라서 전쟁 기술과 전략적 사고가 발달했다. 근대 군국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동서양 전략서를 취합해 '통수강령'을 발간해 간부교육 자료로 사용했다.
여기에는 지휘관과 참모의 역할을 설명하고 일본과 세계 주요전쟁사에 나타난 전략전술을 정리·분석해 놓았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은 대부분 피동적이며 방어적 성격이었다.
그리고 타국이 시작한 침략전쟁의 구심력에 흡수되어 간 것들이다. 따라서 독자적인 입장에서 전쟁계획을 수립하고 종전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으로 전략을 세우고 진행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전쟁과 전략전술에 관한 서적 역시도 대부분 외국의 고전과 교범을 참고로 했다.
전략 마인드의 결핍은 다수의 의견이 제각각 고집스럽게 대립해 충돌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전시뿐만 아니라 평화 시에도 군사적 안보와 외국과의 경제통상의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