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종칼럼] 포니 자동차의 기억
"국산 자동차 타고 다니면 마음 편해"
정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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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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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오래전 외교부 파견 해외연수생 시절의 기억이다.
해외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생기는 고민 중의 하나는 자동차 구입이다. 일단은 외제차에 눈길이 쏠리게 된다.
현재는 한국자동차들이 세계 선두그룹에 속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전에는 자동차매장 구석에 초라하게 놓여 있는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외제차를 사려고 하다가도 막상 주눅든 3류 자동차처럼 거리를 달리는 국산차를 보면 마음에 걸리게 된다.
1980~90년대에는 국산차의 성능이라던가 안전도 면에서 외제차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중동의 무더위를 이기지 못해 자동차 창문의 고무 완충재가 녹아내리기도 했고 차체 철판이 약해 안전도가 의문시되기도 했다.
몇 년을 타다가 중고차 시장에 내놓으면 벤츠와 같은 고급차로부터 시작해 가격순위가 매겨진다.
그 때문에 외제차를 구입하고 이후에 매각 대금을 갖고 귀국하면 그것이 더 국익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그래도 해외시장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국산차들을 보면 단순한 산술적 계산을 넘어서는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도 국산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마음이 편했다. 외교관 차량으로 사용하면 한국차의 이미지는 고급화되고 자연스러운 선전효과도 만들어 낸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출발해 북서쪽으로 클레오파트라의 궁전터가 남아 있는 지중해 연안 마쌀 마투르까지는 약 450 km다. 북아프리카 해안도로에는 운행하는 차량도 드물어 지평선 넘어 길게 뻗어 있는 사막 고속도로를 포니 자동차는 잘 달렸다.
국산 1세대 소형차인 포니가 시속 100km를 넘으면 도로 위를 톡톡 튀면서 달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날렵하게 생긴 모습의 차체가 방금 발사된 총알처럼 나간다.
북아프리카 도로는 지중해의 환상적인 해변 풍경을 끼고 길게 리비아 국경 쪽으로 이어진다. 바닷물 빛깔은 여러 번 아름답게 변해 코발트색에서 연하늘색, 남색, 초록색으로 바뀐다.
포니는 한 번의 고장도 없이 3년간을 우리 가족을 위해 봉사했다. 귀국할 즈음 차를 팔 때 값은 조금 덜 받더라도 택시회사에 파는 대신 육군 병원 의사에게 팔았다.
차량을 인도해 준 다음에도 우리 가족은 길에서 은빛 포니를 만나면 “우리 차다. 우리 차다”하며 반가워했다.
동국대 행정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외교안보전공, 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를 졸업했다. 외교부 입부 후 카이로 대학과 American Univ. in Cairo에서 수학했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일본, 아랍에미리트,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근무했다. 주 카타르 대사로 퇴임했다.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과 카타르 국왕훈장(Sash of Merit)를 수여 받았다. 저술로는 '석유전쟁', '외교관 아빠가 들려주는 외교이야기', '마하나임'이 있다. '중동냉전과 나세르의 적극적 중립주의'등 논문도 다수 있다. 현재 한국외교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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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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