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종칼럼] 레바논 고등학교 교가의 진취성
'코스모폴리탄적인 자유로움과 국제화 감각'
정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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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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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레바논은 아랍연맹 22개 회원국 중 하나다. 아랍국가면서도 독특한 면을 갖고 있다.
법제상 대통령은 마로나이트 기독교도로, 국무총리는 순니파 이슬람교도로, 그리고 국회의장은 시아파 이슬람교도로 자격을 정해 놓고 있다.
레바논 고유의 기독교인 마로나이트와 로마 가톨릭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과 드루즈 등 종파가 공식적으로만 17개에 달한다.
고대 레바논은 페니키아로 알려져 있고 알파벳 문자를 발명해 유럽으로 전해주었고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해양교역민족으로 발전했다.
이같은 이유로 인종적으로도 유럽계와 아랍계가 혼재해 있다. 특히 11세기부터 약 200년간 계속된 십자군 전쟁의 교두보 지역으로서 역사적 유산이 남아있다.
레바논의 베카계곡은 로마 시대에는 제국의 식량창고로 불릴 만큼 곡창지대였다.
그리고 레바논과 시리아에는 로마 유적과 중세 유럽식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유럽 고고학자들의 주요 방문지가 되어 있다.
이 중 1031년 십자군에 의해 건설된 시리아 북부 홈스(Homs)의 크락 데 슈발리에(Krak des Chevaliers)는 가장 유명해 성벽 밑으로 지나가면서 올려다보는 광경은 장대하다.
레바논은 근대 아랍 문예부흥운동의 중심지였다. '예언자' 책 속의 “사랑이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로 유명한 카릴 지브란을 비롯한 지성인들을 다수 배출했고 영화와 음악산업도 발달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발생한 수차례 중동전쟁과 레바논 내전으로 발생한 피해와 수십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난민들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없었으면 상당한 발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전투로 고통을 받고 있다. 레바논은 학교 교육의 세계화도 유서가 깊다.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사를 배출한 베이루트의 부루마나 고등학교(Brumana High School)는 1873년 미국 퀘이커 교단이 세운 학교다.
아메리칸 대학교(AUB)는 1866년 미국 기독교단이, 그리고 성요셉대학(St. Joseph Univ.)은 1875년 프랑스 가톨릭교단이 세웠다.
레바논의 어느 학교 교무실에는 다음과 같은 표어가 붙어있었다. “학생들은 당신이 가르친 내용은 오랜 후에 잊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에게서 느낀 것은 잊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의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교육철학을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부루마나 고등학교의 교가에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자유로움과 진취성이 나타난다.
"세계를 여행하다 호주의 해변에서 옛 친구를 만났네. 자네 부루마나 출신 아닌가, 모교의 풍경은 그대론가, 그때 그 친구들도"라는 가사처럼 국제화된 감각이 있다.
중동 국가의 국민들은 모두가 아랍인이며 이슬람교도며 보수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실수를 할 수가 있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레바논일 것이다.
동국대 행정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외교안보전공, 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를 졸업했다. 외교부 입부 후 카이로 대학과 American Univ. in Cairo에서 수학했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일본, 아랍에미리트,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근무했다. 주 카타르 대사로 퇴임했다.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과 카타르 국왕훈장(Sash of Merit)를 수여 받았다. 저술로는 '석유전쟁', '외교관 아빠가 들려주는 외교이야기', '마하나임'이 있다. '중동냉전과 나세르의 적극적 중립주의'등 논문도 다수 있다. 현재 한국외교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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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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