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로] 훈민정음과 한글

차석록 승인 2022.10.10 05:59 의견 0
마곡로


[나눔경제뉴스=차석록 편집국장] 30년 넘게 기자를 하다보니 기업 홍보실에서 보내오는 보도자료를 매일 접하게 된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요즘, 보도자료에 영문이 많다. 특히, 정보통신(IT) 관련, 보도자료는 더욱 그렇다. 어쩔때는 마치 영문 자료를 보는 듯하기도 하다.

영어가 세계공용어인 글로벌 시대다. IT시대다. 그러려니 하지만,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홍보실 직원들의 성의 부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들도 영어 단어에 한글 설명을 달아주는 노력이 과거에 비해 덜하다. 인터넷 기사를 경쟁사들 보다 1초라도 먼저 올려야 하기에 그런 작업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

한글은 영어에 치여 뒤로 밀린지 오래다. 주변의 아파트 단지 이름을 보면 아름다운 OO마을은 사라지고 영어로 바뀌었다. 영어 이름이 뭔가 있어보이고 집값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반대 상소를 올린 최만리.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글 창제작업을 벌인 집현전의 수장이었다. 부제학에 오르고 청백리에도 선정된 당대의 존경받는 학자이었다.

최만리는 정창손, 신석조, 김문, 하위지, 송처검, 조근과 함께 1444년 2월 20일에 연명상소(갑자상소)를 올려 한글 반포를 반대했다.

당시, 성리학은 조선시대 전체를 지배한 기본적인 사상이었다. 기본적 외교 방침의 하나는 사대(事大)다.

이들은 새로운 문자를 제작, 보급하는 일은 사대의 관례에 어긋나는 일로 오랑캐의 소행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한글이란 시골촌부나 사용할만한 상스러운 문자이고,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한국어를 적던 표기법인 '이두'와는 달리 출세에만 급급한 벼슬아치들을 양산하여 학문의 발전을 쇠퇴시킬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세종대왕은 최만리를 비롯한 연명상소를 올린 7명이 지속적인 반대를 이어가자 진노했다. 정창손을 파직시키고, 7명 전원을 의금부에 하루동안 가두어 버렸다.

한글 창제를 처음에는 찬성했다가 반대로 돌아선 '김문'은 곤장 100대를 맞았다. 최만리는 벼슬에서 물러난후 낙향했다.

세종의 뜻을 거스릴 수 없음을 알았기에 더 이상의 반대 상소는 없었다. 아니, 왕의 권위로 반대를 짓눌러 버렸음이다.

이처럼 세종대왕의 혁신 사상과 백성을 돌보고자 하려는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글은 없었을 것이다.

10월9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576돌 한글날을 맞아 "정부는 공공기관, 언론과 함께 공공언어에서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을 줄이고, 쉬운 우리말로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 총리는 "우리의 말과 글의 힘이 곧 우리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여야도 한글날을 맞아 나란히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애민(愛民) 정신'을 본받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은 애민 정신을 통한 민생 회복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막말 논란' 등이 우리말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는 왜 이들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한글의 정신인 '애민사상'이 그저 정치인들의 입바른 소리로 들리는지 모르겠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왜 만드셨는지, 다시 한번 보자.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노라.
내가 이를 위해 가엽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것이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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