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경제뉴스=차석록 편집국장] 퇴근해보니, 윗집에서 아기 백일이라고 백일떡을 가져왔단다. 이쁘게 포장된 백설기다. 사실 윗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워낙 조용했는데, 최근들어 가끔 아기 울음 소리가 나서 "누가 살고 있지?"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런데, 아기 100일떡을 갖고 왔다니, 아파트에 거주한 기간이 20년이 넘었지만, 한번도 없었던 참신한 경험이었다.
떡을 먹으며 우리 부부는 생각이 많아졌다. 백일떡은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는 집사람 말에 "어떻게 하나?"했더니 "기다려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백일잔치 초대가 없어졌다. 바쁘게 살고, 남에게 폐끼친다는 생각에 점차 없어져,이제는 가족끼리만의 행사가 됐다.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는 날, 즉 ‘백일(百日)’은 한국 전통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선, 과거에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특히 생후 100일 이전에 병이나 영양 부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100일을 무사히 넘기면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그래서 가족들은 이 시점을 기념하며 조상과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으로 잔치를 열었다.
백일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생존을 넘어, 아기가 가족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이웃과 친척들을 초대해 아기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축복을 받으며 공식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되었다.
백일날에는 떡(특히 백설기)을 이웃에게 나누는 풍습이 있다. 이는 복을 나누고 액운을 막으며, 아기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떡을 백 개 돌리면 아기도 백 명의 복을 받는다’는 속설도 있다.
이처럼 백일잔치는 우리의 오래고 아름다운 풍습이지만, 점차 희미해지고 있어 아쉬울 뿐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풍습이 있다.
일본은 생후 100일 또는 120일을 전후해 '오쿠이즈메'(お食い初め)라는 풍습이 있다. 어른이 아기에게 음식을 먹이는 시늉을 하며 축복을 기원하는데, 아기가 평생 먹을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중국도 아기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만월(滿月)과 백일(百日)이 있다.만월은 아기 생후 30일을, 백일은 생후 100일을 기념한다. 가족과 친척이 모여 잔치를 하고, 붉은 달걀·떡을 나눈다.
인도도 생후 6개월 무렵에 첫 이유식을 시작하는 날을 기념하는 안나프라샤나(Annaprashana)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젊은 인구가 많다. 서울의 비싼 집값을 피하고 출퇴근에 시간과 교통비용을 더 쓰더라도 쾌적한 주거환경을 선택한 세대들이다.
지역 주민들의 평균 연령이 30대 중반이다. 그래서 유독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있지만, 젊은 엄마들이 나와서 학원 셔틀버스에 타는 아이들을 배웅한다.
산책을 하다보면 유모차에 아기들을 태운 젊은 부모나 엄마들이 적지않다. 신도시는 아이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다. 우선 단지 근처에 학교들이 대부분 있다. 위험한 도로를 건너지 않도록 설계됐다. 쾌적하다. 녹지공간이 많고 산책로나 공원들이 많다.
문제는 교통이다. 지하철을 좀 더 많이 연결해준다면 우리나라의 저출생이나 집값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엊그제 집사람이 외출한 사이 윗집 젊은 부부가 아기를 안고 초인종을 눌렀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문을 열었더니 "아주머니(집사람)께서 용돈(떡값)을 주고 가셨기에 인사를 드리러왔다"고 말한다.
엄마 품안의 아기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는데, 이쁘고 귀여운 얼굴이다. 그들은 집사람에게 아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안고 왔는데, 아쉽게도 어긋나버렸다.
나이가 좀 먹어서 그런지, 요즘은 아이들을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떡을 돌릴 용기를 내어준 윗층 젊은 부부가 고맙다. "oo아 무럭무럭 잘 커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