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종칼럼] 신라 승려 혜초의 시(詩)

세계로 나가서 활동할 수 있는 자신감 불어 넣어

정기종 승인 2024.09.26 06:31 의견 0
왕오천축국전은 신라승 혜초(慧超)가 불교의 뿌리를 찾아 천축국 다섯 나라를 답사하고 성덕왕 26년인 727년에 현지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한 여행기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시는 짧지만 때로는 소설 못지않게 강렬한 메시지를 마음속에 남긴다.

한 국가가 융성할 때에 문학은 국민들 그중에도 젊은 세대의 역동성을 북돋는 역할 을 했다.

근대에 들어서 영국의 국력이 부상할 때 문학은 강한 영향력을 주었다. 키플링의 '백인의 책무'(The White Man's Burden)나 '만달레이로 가는 길'(The Road To Mandalay), 그리고 콘래드의 '로드 짐'(Lord Jim)과 같은 글은 세계로 향하는 청년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어린이들은 피터팬과 정글북을 읽으면서 바다와 동양에 대한 신비감을 키웠다.

이러한 문학의 힘을 침략전쟁과 식민주의로 향하게 만든 것은 당시 제국주의 정부와 지식인들의 잘못이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오도된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것도 역시 인류를 위한 문학과 인문학의 본질을 사랑하는 지성인들의 역할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용기있고 활동적인 글 자취를 찾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21세기를 맞아 조상의 이러한 정신을 소환해야 할 시기가 되었음에서다. 한민족의 진취적 자세는 기록되어 중앙아시아 천산산맥 석굴에도 남았다.

1908년 프랑스인 펠리오는 중국 서부의 변방 간쑤성의 둔황 천불동 석굴에서 필사본 여행기를 발견했다. 이로써 '왕오천축국전'이 과거로부터 돌아왔다.

신라승 혜초(慧超)가 불교의 뿌리를 찾아 천축국 다섯 나라를 답사하고 성덕왕 26년인 727년에 현지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한 여행기다.

704년 통일신라에서 태어난 혜초는 723년부터 727년까지 4년간 인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페르시아까지 여행했다.

혜초의 글을 읽어 보면 당시 신라인의 굳센 의지를 느낄 수 있다. 혜초는 책 속에 오언율시 5수를 남겼다.

그중 파미르 고원이 멀리 바라보이는 험로에서는 '겨울에 토화라에서 눈을 만나 마음에 품은 말을 적다'(冬日在吐火羅逢雪述 懷, 동일재토화라봉설술회)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싸늘한 눈은 얼음에 붙어 합치고 冷雪牽氷合(냉설견빙합)

찬 바람은 땅을 쪼갤 듯 사납다 寒風擘地烈(한풍벽지열)

큰 바다는 얼어서 단(壇)을 이루고 巨海東墁壇(거해동만단)

강물은 벼랑을 물어뜯는데 江河凌崖囓(강하릉애설)

용문에 폭포는 끊어지고 龍門絶瀑布(용문절폭포)

우물에는 똬리 튼 뱀이 엉켰나니 井口盤蛇結(정구반사결)

불에 의지해 계단 오르며 노래 부른다 伴火上陔歌(반화상해가)

어찌하면 파미르를 넘어갈 수 있는가 焉能度播蜜(언능도파밀)”

20살의 젊은 신라인 승려는 파미르 고원의 상상하지 못한 추위와 험준한 자연환경에 놀라 떤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노래 부르면서 홀로 걸음을 계속하는 한민족의 기상을 후세에 남겼다.

이와 같은 역사는 이제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를 맞은 한국인들에게 담대하게 세계로 나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 문화예술 작품으로 훌륭하게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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