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종칼럼]이제는 여권 기재란에 목적지와 경유지가 없다
"거의 모든 나라를 무대로 자유롭게 활동"
정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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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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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 여권에는 목적지와 경유지가 명시되어 있었다.
여행 국가와 경유하는 국가 이외의 나라에는 여행이 허가되지 않은 것이다. 불필요 한 해외여행을 규제하면서 외화를 절약하려는 목적이었다.
테러범에 의한 피랍방지와 안보상의 이유도 있었다. 여권을 받기 전에는 몇 시간 정도 소양교육 과목을 수강하고 수료필증을 여권신청서에 함께 제출하던 시기였다.
소양교육 중에는 해외에서 낯선 술좌석에 참석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뒷 벽에 북한 찬양 문구와 인공기가 걸리는 영화 관람도 있었다. 취중에 찍힌 이런 사진들이 귀국 후에 고정간첩의 협박용으로 사용된다는 주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한국인 대부분은 해외에 나가면 가급적 단체로 움직이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이나 서구국가 역시 비슷했다. 이들 나라 역시 소련과의 대결에 임해 방첩활동에 전력을 다했고 우리와 비슷한 소설과 영화를 만들었다.
이 중에는 명작으로 꼽히는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나 '제3의 사나이'도 있다. 1989년 12월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서 동서냉전이 해체되기 이전까지 국제사회의 현실이었다.
항공노선도 지금처럼 빈번하게 직항 항공편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두 편 있는 노선이 많았고 제3국을 경유하는 노선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건설 근로자들이 많았던 중동 건설현장에서는 파키스탄 항공이 주로 이용되기도 했다. 건설회사 유니폼을 입고 공항 구내 한쪽에 오와 열을 지어 단체로 바닥에 앉아서 대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드물지 않았다.
이제는 여권에 목적지와 경유지가 사라졌고 거의 모든 나라를 무대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여권의 파워는 세계 정상급이다. 대한민국의 국토면적이 크다고 할 수는 없다. 분단상황으로 인해 섬이 된면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 지정학적으로 특수한 조건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좁은 국토를 넓게 쓰는 방법이 된다.
동국대 행정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외교안보전공, 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를 졸업했다. 외교부 입부 후 카이로 대학과 American Univ. in Cairo에서 수학했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일본, 아랍에미리트,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근무했다. 주 카타르 대사로 퇴임했다.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과 카타르 국왕훈장(Sash of Merit)를 수여 받았다. 저술로는 '석유전쟁', '외교관 아빠가 들려주는 외교이야기', '마하나임'이 있다. '중동냉전과 나세르의 적극적 중립주의'등 논문도 다수 있다. 현재 한국외교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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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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