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어주는 고사성어](38) 삼지무려(三紙無驢)

종이 세 장을 쓰고도 ‘려(驢)’자 하나 못 쓴다

배태훈 승인 2022.12.01 09:00 의견 0
[아빠가 읽어주는 고사성어]


[나눔경제뉴스=배태훈 다함께연구소장] 오늘 인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편(勉學篇)에 나오는 이야기야.

옛날에 어떤 선비가 살고 있었어. 인수는 선비를 알아?

선비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말해. 옛날에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귀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존중했지. 선비 중에 부자도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도 있었어. 사람들은 부자이든 가난하든 선비라고 하면 모두 존중했어.

그런데 이 선비는 이름만 선비였어. 글도 모르고 글을 배우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어.

어떻게 선비가 됐는지 모르지만, 어디를 가든지 붓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선비라는 것을 자랑하면서 다녔어. 사람들은 처음에 그를 보고 선비라서 존중했어.

인수야. 이 선비는 글도 모르면서 왜 선비라고 자랑을 하면서 다녔을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은 그가 이름만 선비이지, 글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어.

그래서 겉으로만 그를 존중하는 척했어. 속으로는 바보라고 생각하며 그를 놀려줬어.

하지만 선비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어. 사람들이 자신을 존중하는 모습만 보고 흐뭇했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바보라고 하는 걸 알았다면 이 선비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렇구나! 그런데, 이 선비는 글만 모르는 게 아니었나봐! 멍청하기까지 해서 속으로 자기를 비웃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 앞에서 “선비님”하면서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좋아했어. 아이고! 글도 모르고 멍청한 선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선비네 집에서 나귀 한 마리를 샀어. 당시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에게 계약서를 써 주었지. 글을 모르는 사람은 글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계약서를 써 주었지.

나귀를 샀으니 선비는 나귀를 파는 사람에게 돈과 함께 나귀를 샀다는 계약서를 써서 줘야 했어. 선비였기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계약서를 쓰는 것은 말도 안 됐지. 하지만 이 선비는 글을 모르잖아. 이 선비는 어떻게 했을까?

이 선비는 계약서를 쓰기 위해서 종이를 펼쳐 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 하지만 글을 모르니, 제대로 계약서를 쓸 수 있었을까?

계약서를 쓸 수 없었지. 무려 종이 세 장을 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시간은 점점 흘렀어. 계약서를 받아서 집에 가야 하는 사람이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르자 답답해서 이야기했어.

“아니, 계약서를 써서 준다고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종이만 붙들고 있어요. 빨리 계약서 써주세요!”

그러자, 선비는 화를 냈어.

“무식한 사람이! 계약서를 쓰는 것이 뭐가 그리 급한가! 지금 막 ‘나귀 려’(驢) 자를 쓰려는 중이야!”

글을 몰라 종이에 아무 것도 적지 못하면서 도리어 화를 내는 선비는 어떻게 됐을까?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랑하는 사람이나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삼지무려(三紙無驢), “종이 세 장을 쓰고도 ‘려(驢)’자 하나 못 쓴다”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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