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로] 막걸리 한잔

차석록 승인 2020.12.27 11:50 의견 0


[나눔경제뉴스=차석록 편집국장] 평소 술을 잘 먹지도 않는 딸 아이가 "요즘 핫 하다"며 엊그제 '크리스마스'에 한 유명 술도가의 막걸리를 주문했다. 시중의 막걸리에 비해 비싼 가격이라 흠칫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에 케이크의 동반주로 와인이나 맥주가 항상 자리를 차지했었는데, 우리의 술 '막걸리'도 꽤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막걸리와 얽힌 추억 몇건이 생각난다. 제대로 막걸리를 마시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다. 학교 앞 식당이나 술집에서 친구들과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마시던 기억이 난다. 특히 먼저 군대간 친구들이 휴가를 나오면 배를 부르게 한 막걸리다.

가장 기억이 남는 막걸리는 2학년을 마치고 군대 가기전, 용돈을 벌겠다고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이른바 '노가다'를 할 때였다. 당시 오전 10시쯤 되면 참이 나왔는데, 꼭 있었던 것이 막걸리 몇통이었다.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당시 술에 약했던 나는 공사장 아저씨들이 권하던 막걸리 두어잔에 뻗어버렸다. 아저씨들이 점심 먹으러 가자며 흔들어 깨보니 시간은 12시가 다 되었다. 2시간 가까이 일을 못한 것이다.

함께 일하던 아저씨 한분이 "반장님이 너 깨우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때 반장님은 30대 후반의 건설회사 소속 직원였는데, 아마 막내 동생 같은 녀석이 힘든 공사판에 돈벌겠다고 나온 나를 안쓰럽게 보셨던 거 같다.

수십년이 흘렀지만 막걸리 하면 생각나는 분이다. 지금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때 못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꼭 하고 싶다.

집근처에는 작은 산이 있다.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르는 산이다. 나도 아파트 현관문을 나와 정상에 오른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1시간반 남짓 걸리는 이 작은 산을 좋아한다. 신도시 건설로 산의 일부가 잘라졌지만 여전히 주민들이 아끼는 힐링장소다.

그 산 정상에는 작은 정자가 있고 그 옆에는 막걸리를 파는 아저씨가 있다. 날씨가 나쁜 날을 빼곤 언제나 그 자리에는 한잔에 천원하는 막걸리에 멸치 안주를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래주던 막걸리 좌대 [사진=차석록 기자]

막걸리 한잔에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올라오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외로움과 심심함을 그 막걸리 한잔에 떨칠 수 있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연휴기간 오랜만에 올라와 보니 그 자리가 깨끗했다. 막걸리를 파시던 주인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인 듯하다.

유명 도가의 술은 아니지만,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주던 그 막걸리 한잔이 생각이 나는 크리스마스 연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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