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로] 진작에 바꿀걸

차석록 승인 2021.03.03 16:40 의견 0
마곡로 - 진작에 바꿀걸 [그래픽=차민수기자]


[나눔경제뉴스=차석록편집국장] 최근 살고 있는 아파트 보일러를 교체했다. 보일러 기사는 "잘 사용해서 17년이나 쓰셨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면서 이 아파트 단지에 보일러 교체하지 않은 집이 이제는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칭찬인지, 한심하다고 말하는건지 헷갈린다.

그동안 보일러는 여러 번 집사람의 속을 썩였다. 그때마다 '사후관리'(AS)를 받아 수명을 연장시켜왔다. 그러다가 얼마전부터 누수가 생기고 하루에도 몇번씩 보일러 전원이 꺼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은 새거로 교체했다.

교체하기 일주일전에도 보일러가 다운이 되었고, AS기사는 집사람 눈치를 살피면서 "이 제품은 너무 오래되서 부품도 나오지 않는다. 이제는 교체하셔야될 거 같은데···. 암튼 최대한 사용하시다가 교체하시려면 연락주세요"라며 명함과 응급조치요령을 알려주시고는 총총히 떠났다.

요즘은 새로 보일러를 설치하거나 교체시 친환경 보일러가 의무화되어 있다. 또, 구청에 보고까지 해야 하고, 친환경 제품이 아니면 과태료도 문단다. 친환경 보일러는 미세먼지의 주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NOx)을 감소시키고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크게 줄여준다.

아쉽게도 친환경 보일러 보조금 제공이 얼마전에 끝났는데, 아마 조만간 다시 재개할 수도 있다는 기사의 말에 우리 부부는 "그때까지 고치면서 쓰자"고 합의했었다.

그래서 보조금 나올때까지 버티면서 사용하려했는데, 물이 줄줄 새고 전원이 수시로 꺼지면서 더 큰 일 나기전에 서둘러 교체했다.

어쨌든 목돈들여 보일러를 교체하니, 이 겨울에 언제 또 고장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떨쳐냈다. 특히, 항상 냉랭했던 아들 녀석의 방에 온기가 돌았다. 겨울이면 이불을 둘둘말고 있던 녀석이 따듯함에 환호한다.

집사람도 고장났을때 진작 바꿀걸 너무 늦게 바꿨다며 입맛을 다셨다. 대부분의 주부들이 다 그렇지만, 가전제품은 고장만 나지 않으면 천년만년 수명이 다할때까지 쓴다.

제품 수명 이상으로 알뜰하게 사용해오던 것을 '훈장'으로 여겼던 집사람도 최근 2~3년전부터 냉장고,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들이 하나씩 수명을 다하면서 교체할 때 마다 깜짝놀랄만큼 좋아진 성능과 덜 나오는 전기료에 감탄사를 쏟아냈다. "진작에 바꿀걸."

벌써부터 가스비가 얼마나 줄어들지 들 떠 있다. 그러면서 또다시 다짐한다. "정말 가전제품은 오래 쓴다고 좋은게 아니야. 앞으로는 5년만 쓰면 교체해야지."

갈수록 잔소리가 늘고 목소리는 커져가지만, 그래도 "30년된 남편도 빨리 갈아치워야겠다"고 하지 않는 집사람이 그저 고마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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