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여행자의 좌충우돌 유럽 여행기] (8) 나의 몸짓이 모든 언어가 되어줄 거라 믿어요!

김다은 승인 2020.04.08 13:48 의견 0

여행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나눔경제뉴스는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김다은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게재한다. 김다은 작가는 여행을 좋아해 직장을 관두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책도 쓰고 강의도 다닌다.[편집자주]

코톨드 갤러리 고흐의 작품과 다른 작품들을 열심히 눈에 담은 후, 우리는 사부작사부작 걸어 코벤트가든으로 넘어왔다. 코벤트가든은 구경할 것 투성이었다. 우리는 곳곳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구경하다가, 거리에 펼쳐진 마켓을 구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도 버스를 타거나 카페에 잠시 앉아 있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서 있거나 걸어 다녔던 탓에 지금 당장 앉지 않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다. 자리가 있는 카페를 찾아 걷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코벤트가든을 빠져나와 내셔널 갤러리 앞까지 와있었다.

약 2,3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내셔널 갤러리, 제작연도 순으로 전시 되어 있고 입장료는 무료이다. [사진촬영=김다은작가] 

나는 그냥 갤러리 앞에 보인 계단에 철퍼덕 주저앉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안 되겠어, 우리 여기에 잠깐 앉았다 가자”

휴대폰은 이미 2만 5천 보 이상을 걸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카페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해 이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니…. 피곤이 몰려오니 이제는 숙소에 빨리 가서 가장 편한 자세로 드러눕고 싶었다. 지금 여기서 가장 빨리 숙소로 갈 방법은 피커딜리라인 튜브를 타는 것.

우리는 다시 피커딜리서커스역을 향해 걸었다.

걸어가는 중에 지나가는 트래펄가 광장 곳곳에도 ‘거리의 예술가’들이 각자의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온종일 공중부양을 하는 사람,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 정교하게 오와 열을 맞춰 분필을 이용해 바닥에 글씨를 적어 내려가는 사람…

 

많은 예술가들이 내셔널 갤러리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진촬영=김다은작가] 

 

다양한 퍼포먼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촬영=김다은작가]


광장을 메운 다양한 예술가들을 구경하며 그냥 지나치려던 찰나, 유독 한 사람에게 눈길이 갔다. 티셔츠, 바지, 심지어 운동화와 양말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갖춰 입은 사람이었다.

다소 왜소한 체격의 그 사람은 주변 세팅을 마친 듯하더니 공연을 시작할 듯 말 듯 한참을 뜸을 들여 나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주변은 나처럼 궁금해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큰 원이 만들어졌다. 마치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던 것 마냥 뜸만 들이던 그 사람은 그제야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스페인에서 온 공연가, 윌리엄.

 

공연을 구경하는 아이와 함께 즉석에서 무대를 꾸미고 있다.[사진촬영=김다은작가]


그는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가며 음악에 맞춰 한 손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했다가, 그 동작 그대로 점프를 하며 모자를 쓰고 벗는 등 묘기 수준으로 공연을 펼쳐나갔다.

그는 자신이 스페인 사람이라 영어는 잘 못 하지만 이 공연에서 보여주는 자신의 몸짓이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모든 언어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며 관객들을 향해 외쳤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그냥 지나치려던 사람들도 되돌아서게 할 만큼 컸다. 저 청년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여행 내내 언어 앞에 위축된 나는 그의 말을 들으니 왠지 ‘영어’ 때문에 긴장하고 있던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픈 다리도 잊은 채,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매료되어 공연을 끝까지 관람했다.

한 시간 가까이 펼쳐진 그의 공연이 끝나고 우리의 마음을 녹여준 윌리엄에게 감사의 표시로 주머니에 남아있던 동전을 주고 나서야 겨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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