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나눔경제뉴스는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김다은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게재한다. 김다은 작가는 여행을 좋아해 직장을 관두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책도 쓰고 강의도 다닌다.[편집자주]
지금은 꽤 오래전 이야기지만 지난 2015년, 생전 처음 유럽여행을 떠나기 위해 남들도 다 살 것 같은 ‘여행 가이드북’을 구입했다. 막막하기만 했던 여행 준비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가이드북에는 수많은 관광 명소와 맛집, 카페를 지면 가득 빼곡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어디부터 어디를 가야 할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꼭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었다. 코벤트 가든에 있는 ‘몬머스 커피’다.
‘어서와 유럽은 처음이지?’를 경험하기 위해 날아간 겨울의 런던은 우중충한 날씨가 더해져서 더 춥게 느껴졌다. 우리는 겨우겨우 여행 가이드북에서 딱! 찍어 두었던 몬머스 커피에 찾아갔다(코벤트 가든에 있다는...).
가게 밖으로 족히 20명은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커피숍에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지?’ 믿을 수 없었지만, 일단 사람들 뒤로 줄을 서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긴 줄과 참을 수 없는 추위에 결국 그냥 돌아와야 했다. 예매한 뮤지컬 공연 시간이 다가오기도 했지만, 워낙 추운 것과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엔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결국 나의 짜증 때문에 남편과 나는 그날 여행 중 처음으로 싸웠다. 그것도 길 한복판에서. 긴 줄과 매서운 추위는 남편 탓이 전혀 아닌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때 그렇게 남편에게 짜증을 냈던 걸까?
그렇게 꼭 가보고 싶었던 카페였던 ‘몬머스 커피’는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싸웠던 추억(?)이 함께 쌓인 애증의 카페가 되어버렸다.
오픈형으로 되어 있는 몬머스 카페. [사진촬영=김다은작가]
그때 가지 못했던 아쉬움과 애증의 마음을 달래고자 이번엔 버로우 마켓 옆에 있는 몬머스 커피를 찾았다. 버로우 마켓 지점은 별도의 문이 없는 오픈 형식이라 멀리서 봐도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카페 안은 벌써 많은 사람으로 북새통이었다. 우리는 운이 좋아 창가 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었다. 비가 내린 직후 잠깐 선선했던 날씨는 이번엔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화창하다 못해 더웠다.
높은 천장, 천장 곳곳에서부터 내려온 조명들, 무심하게 써 내려간 검은색 칠판 위의 글씨들은 런던의 감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플랫 화이트와 필터 커피 그리고 팽오쇼콜라를 주문했다.
북적이는 상황에 안 그래도 작은 내 목소리가 혹여나 직원에게 잘 들리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친절한 직원은 그 상황에서도 내 말에 최대한 귀 기울여 주었다.
우리나라 대부분 커피숍에 있는 진동벨이 여기엔 없다. 대신 이곳에선 내 이름이 언제 불릴지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했다. 북적이는 실내에서 서로의 동선이 꼬일 법도 한데, 어찌나 질서 있게 사람들이 자신의 커피를 찾아가는지 신기했다. 트레이도 없이 달랑 커피잔만 내어주는데도 사람들은 용케 잘 들고 갔다.
메뉴가 적혀 있는 칠판도, 예쁜 조명도.... 모든 것이 예뻐 보였다. [사진촬영=김다은작가]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는 중에 내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커피를 쏟지 않기 위해 커피잔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걸어가 겨우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앉은 창가 자리는 바닥이 몇 계단 위에 올라와 있는데다가 카페 가장 구석에 있다 보니 카페 안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보듯 볼 수 있었다.
북적이는 소리를 틈타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는 손님들,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는 직원들, 바로 옆 창가에 비치는 햇살, 향긋한 커피 향, 분위기 있는 배경음악까지!
몬머스의 시그니처 커피인 라떼와 아메리카노 한잔. [사진촬영=김다은작가]
우리는 서로 별다른 특별한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냥 여기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때 마시지 못한 커피를 이제 와 맛본다며,
오랫동안 기다렸다 마시는 커피라 그런가 더 맛있다며,아무래도 오늘 이렇게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려고 그때 그렇게 싸웠나 보다며,
카페 안의 북적이는 소리는 우리가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날 때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소리가 전혀 소음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비록 그때와 같은 지점은 아니지만, 원했던 커피숍에 이렇게 다시 왔고, 맛보고 싶었던 커피를 심지어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마실 수 있었으니까. 이렇게 우리는 몬머스 커피에서의 새로운 추억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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