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여행자의 좌충우돌 유럽 여행기] (4) 때로는 부지런함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김다은 승인 2020.03.06 12:23 의견 0

 여행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나눔경제뉴스는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김다은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게재한다. 김다은 작가는 여행을 좋아해 직장을 관두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책도 쓰고 강의도 다닌다.[편집자주]

시차 때문인지 밤 9시가 되기도 전에 우리는 기절하다시피 잠들어 버렸다. 그러곤 꼭두새벽에 눈을 뜨고 말았다. 맙소사! 제대로 시차적응 실패였다. 이상하게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아침, 한국에서 챙겨온 누룽지를 끓여 대충 아침을 차리며 남편에게 오늘 일정을 쭉~ 브리핑했다.

“오늘은 (일요일에만 연다는) 브릭 레인 마켓을 갈 거야. 오전 10시부터 연다니까 일찍 일어난 김에 조금 일찍 움직여보자”

“그 다음은??”

“근처에 (또 일요일에만 연다는) 플라워 마켓이 있다고 하니, 거기를 들렀다가 버스를 타고 세인트 폴 대성당을 갈까 해. 그리고… 블라블라….”

모든 일정 브리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 서둘러 브릭 레인 마켓으로 향했다. 9시가 되기도 전에 마켓에 도착했다. 평소엔 찾아보기 어려운 자발적 부지런함이었다. 하지만 이런 부지런함을 마켓을 여는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 듯했다. 이른 아침 브릭 레인 마켓의 풍경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각자의 가게를 열기 위해 하나둘씩 나오는 사람들 모습뿐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너무 일찍 왔나 봐”

너무 일찍 도착한 마켓은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이 휑~ 하기만 했다.[사진촬영=김다은작가] 


내가 생각한 풍경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너무 부지런해서 문제였다(직원들보다도 더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말 다했지.). 브릭 레인 마켓은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곳곳에 있어 런던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로, 한국의 홍대 거리와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관점이 달라서 그렇겠지만, 맛과 멋이 있는 동네는커녕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으슥한 느낌의 동네였다(어디까지나 순전히 내 느낌일 뿐이었다.).

굳게 닫힌 가게 문들을 바라보며 조금 더 가면 뭐가 더 있겠지, 문이 곧 열리겠지 생각하며 막연하게 걷고 있는데, 가이드북에서 봤던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24시간 문을 여는 ‘베이글 베이크(Beigel Bake)’였다.

아침을 두둑하게 먹고 나오긴 했지만 우리는 마침 문 연 곳도 딱히 없고, 온 김에 베이글 하나쯤 맛이나 볼까 싶어 냉큼 가게로 들어갔다.

유일하게 우리를 반겨 주던 곳.[사진촬영=김다은작가] 


가게 안은 손님이 없어 조용한데다가 직원들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표정이 심드렁해 보였다. 그냥 나갈까 하다가 어차피 갈 곳도 없으니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볼 요량으로 ‘크림치즈 연어 베이글’과 ‘버터 베이글’을 주문했다.

표정 없는 무서운 얼굴로 주문을 받은 여직원은 무서운 표정을 유지한 채, 이미 몸에 밴 듯 베이글을 반으로 잘라 하나는 크림치즈를 쓱쓱 발라 연어를 사이에 끼워 넣고 다른 하나는 버터를 바른 다음, 종이봉투에 담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다행히 베이글 맛은 괜찮았다. 1.9파운드에 이 정도면 훌륭했다. 어쩌면 그 가격만큼의 맛이었는지도.

9시 30분이 넘어서자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문 연 곳보다는 준비 중인 곳이 훨씬 더 많았다. 공식적인 개장 시간이 30여 분 남긴 했지만 북적이는 마켓의 분위기를 느끼려면 적어도 1시간 이상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도대체 마켓이 뭐라고.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대신 플라워 마켓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다시 들러보자.”는 남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브릭 레인 마켓에서 플라워 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장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휑~ 한 것은 그대로구만........[사진촬영=김다은작가]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을수록 그 간절함으로 얻어낸 기회에 따른 부지런함은 평소보다 배가 되기도 한다. 특히나 여행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간절함의 크기만큼 지나치게 부지런을 떨었다. 하지만 부지런히 움직여 아무리 열심히 계획을 세운다 한들, 그 계획이 반드시 그대로 실현된다는 보장은 없는 법.

때로는 부지런함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필요한 건,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뭐’ 하는 심정으로 쿨하게 넘길 줄 아는 여유로운 마음? (그래도 아쉽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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