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여행자의 좌충우돌 유럽 여행기] (3) 영어듣기평가

김다은 승인 2020.02.27 18:16 의견 0

 여행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나눔경제뉴스는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김다은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게재한다. 김다은 작가는 여행을 좋아해 직장을 관두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책도 쓰고 강의도 다닌다.[편집자주]

히스로공항에서 탄 피커딜리 라인 튜브가 지하를 뚫고 지상으로 올라와 한참을 달렸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비…. 런던은 반갑지만 내리는 비는 영 반갑지 않았다. 튜브를 탄지 40여 분만에 드디어 사우스 켄싱턴 역에 도착했다. 피곤함을 이끌고 겨우 겨우 숙소를 찾아 갔다.

비오는 런던은 운치 있다. 하지만 여행 첫날은 좀 아니지?? [사진촬영=김다은작가] 


예약한 숙소는 1층 프런트에서 열쇠를 받아갈 수 있는 레지던스였다. 나는 프런트에 있는 여직원에게 마이클(에어비엔비에서 예약한 숙소의 호스트)이 일러준 대로 내 이름을 여직원에게 말했다. 그런데 웬걸?? 그 여직원은 내 말을 당최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내 영어 발음이 그렇게 이상한가??’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생각에 긴장감은 급상승했고, 나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여직원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미리 체크인 하는 상황을 그려 봤을 때에는 프런트에서 내 이름을 말하고 열쇠를 건네받은 후, 방 호수를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단지 열쇠만 받으면 되는 건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되었다.

그 순간 나의 첫 번째 영어듣기 평가가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긴장 백배인데 프런트 여직원의 말은 특유의 영국식 억양과 함께 빠르기까지 해서 알아듣기가 더 힘들었다. 신경을 있는 대로 곤두세우고 여직원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입 모양으로라도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싶었다. 생존(?)을 위한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피곤함과 긴장감이 가득한데 잘 들릴 턱이 없었다. 나는 이름도 말해보고 휴대폰으로 에어비앤비 예약내역을 보여주기도 해보고 숙소 주인 마이클의 이름도 말해보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다른 정보를 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뭘 말하지 않았지?

아, 방 호수!

강제로 영어듣기평가를 시킨 그 문제의 방 호수 [사진촬영=김다은작가] 


왜 나는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아니, 애초에 마이클이 프런트에 가면 내 이름 정보와 방 열쇠를 갖고 있을 거라고 했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게 잘못이었다. 물론 영어 앞에 쪼그라든 나의 자신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방 호수인 ‘487호’를 말하니 그녀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열쇠를 건네주고 체크인을 했다는 서명란에 사인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드디어 해결됐다는 안도감에 웃으며 사인을 했지만 사실 등에선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숙소는 아담했지만 생각보다 아기자기 한 것이 아늑하고 좋았다. [사진촬영=김다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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