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풍경.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베네토주 베네치아 광역시에 속하는 도시다. 베네토 주의 주도(州都)이다.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였다. 또한 세계적 관광지이며, 수상 도시이자 운하의 도시로도 유명하다.[사진=배태훈]
[배태훈 다함께연구소장] 유럽여행 16일 차, 2023년 1월 30일.
베네치아에서 사용하는 24시간 프리패스 이용권 ‘바포레토’를 힘겹게 구매하고, 베네치아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가이드를 맡은 큰 아들의 뒤를 따라 베니스 본섬으로 이동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본섬에 들어가면서 화면으로만 봤던 그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 다.
그리고 시작된 수상버스 탑승. 베네치아의 이동은 배로만 다녀야 하는데, 아내가 배 타는 걸 무서워한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수상버스를 타고 유리의 섬인 무라노까지 가서 다른 수상버스로 환승을 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촬영지였던 부라노 섬이었다. 부라노 섬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무사히 도착했다.
부라노 섬은 알록달록 컬러풀한 마을로 유명했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니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그 배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어떤 다리에는 그 모습을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리는 다국적 사진사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도 그 틈에 끼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베네치아의 밤바다에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다. 그리고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배들이 보였다. 바다 위에 자동차 도로처럼 조명으로 길을 밝히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저녁은 본섬에서 먹기로 하고, 서둘러 다시 12번 수상버스에 탑승했다. 그렇게 본 섬에 도착한 후에 저녁을 먹기 위해 4-2번 수상버스로 환승을 하고 한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내 등 뒤가 허전하다는 느낌과 함께 머릿속이 멍해졌다.
“어? 내 가방.” 부라노 섬에서 본섬까지 이동한 12번 수상버스에 내 가방을 놓고 내렸다. 긴 여정 속에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부라노 섬까지 잘 다녀왔다는 생각과 함께 긴장의 끈을 살짝 놓았던 게 화근이었다.
항상 등 뒤에 백팩을 메고 다녔는데, 배 안에서 긴장이 풀어지면서 피곤해서 아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는데, 백팩이 불편해서 가방끈을 풀어놓고 등 뒤에 놓았다. 그리고 정류장에서 그냥 내린 것이었다.
노을진 베네치아 바다.베네치아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비단, 향료, 밀을 거래하는 주요 창구였고,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 중 하나였다. 나폴레옹 전쟁과 빈 회의 이후,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다. 1866년에 이탈리아가 통일되며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되었다.[사진=배태훈]
머릿속에 배 안에서 있었던 장면이 떠오르고, 가방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생각났다. 현금, 카드, 그리고 여권까지. ‘소매치기가 널렸다는 이탈리아에서 수상버스인 배에다 가방을 고스란히 놓고 내렸으니 이걸 어떻게 하지?’ 가족들도 함께 멘붕이 왔다.
다급한 마음에 안되는 영어로 선장과 안내원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방금 전에 부라노 섬에서 12번 수상버스를 타고 내렸는데, 그곳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고 했다.
선장과 안내원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더니 가방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 같다. 미안하다.”
그 소리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안내원에게 조금 더 자세히 정보를 제공하고, 내부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알아봐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내 가방은 검은색 백팩이고, 부라노 섬에서 6시 25분에 출발한 12번 배다. 환승한 곳은 우리가 이 수상버스를 탄 곳이다.” 선장은 우리의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안내원은 우리 가족을 보더니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고, 여러 곳에 무전으로 연락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갑자기 얼굴이 밝아졌다.
“내가 여러 곳에 무전으로 연락을 해봤더니, 그 가방이 12번 배에 있는 거 같다. 선장이 가방을 들고 수상버스 회사에 맡기고 퇴근했다고 한다.
가방을 찾으러 올 때까지 사무실에 있는 사장이 기다린다고 하니, 12번 수상버스 사무실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와!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있나! 우리는 너무 고맙다고 연신 “땡큐”를 외쳤다.
안내원 옆에서 선장은 이런 행운이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면서, 행운의 날이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다. 수상버스에서 잃어버린 가방을 찾은 적이 없다고 했다.
선장의 말을 듣고 있던 안내원은 가방이 있는 사무실로 가는 방법을 알려줬다. “다음 정류장에 내리면, ‘폰테노베’로 가는 배가 온다. 그 배로 갈아타서 폰테노베에서 내려 라. 내가 너희 사정을 이야기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잘 찾아가라.”
마침 안내원의 친구가 12번 수상버스에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안내원의 친구가 가방을 수상버스 사무실에 사장에게 맡겼다고 했다.
어느새 정류장에 도착했고, 서둘러 내렸다. 우리가 탔던 4-2번 수상버스가 정류장을 떠나는 배 위에서 안내원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정류장 이름을 잊지 말라고 연신 외쳤다.
“폰테노베!” “폰테노베!” “폰테노베!” 이탈리아 사람이 모두 소매치기나 사기꾼이 아니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다니 너무 감사했다.
잠시 후에 우리가 타야 할 수상버스가 왔고, 배에 오르자마자 안내원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가방을 찾으러 폰테노베에 가야 한다.”
그랬더니, 젊은 남자 안내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라. 무전으로 너희 이야기를 다 들었다. 폰테노베 역에 내려줄 테니, 걱정 마라. 역에 내리면, 바로 앞이 사무실이니까 가방을 받아가라. 너희는 정말 행운아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기다리던 폰테노베 역에 도착하자마자 내 검은 백팩을 들고 있는 사장이 보였다.
가방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그렇게 한바탕의 소동이 일어나고, 늦은 저녁이 되어버리고 원래 계획했던 일정인 본섬 야경 투어와 맛집 찾아가기는 할 수 없게 됐다.
모두 진이 빠지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저녁 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수단은 또 수상버스였다. 배를 타고 가족들이 모두 가방을 확인하면서 계속 웃었다. 가방을 찾았으니, 창피한 이 순간을 그냥 받아들여야지. 아직도 떠나는 배에서 우리를 향해 "폰테노베"를 외쳤던 안내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