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훈의 행복이야기] (44) 패자형 부모와 동요형 부모

배태훈 승인 2020.12.17 07:00 의견 0
다음세대인 자녀와 부모가 모두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꿈을 꾸는 배태훈 소장의 행복이야기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나 애정이 없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상처가 생기는 건 대부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 때문이다. 기대가 클수록 더 쉽게 상처를 받는다.

특히 가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을 땐, ‘가족끼리인데 그냥 풀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이렇게 저렇게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내 말을 따라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있듯이 상대도 자신의 생각에 따라 반응할 권리가 있다.

미국 심리학자 토머스 고든이 이야기한 세 가지 부모 유형 중 두 번째 유형인 ‘패자형’ 부모와 ‘동요형’ 부모에 대한 이야기하려고 한다.

패자형 부모는 언제나 자녀 마음대로 내버려 둔다. 자녀와 갈등이 생기면, 자녀가 상처를 받을 것을 우려해서 자녀가 이기도록 한다. 자녀가 그릇된 상황에서도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자녀의 감정만 챙기는 부모다.

이런 경우, 자녀가 거칠고 제멋대로 자란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충동적이며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용납이 되는 아이로 성장한다. 이런 아이는 언제나 ‘자기’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주변에서 아이한테 쩔쩔매는 부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년 전부터 아이와 친구 같은 부모가 되는 게 유형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런 부모들 중 상다수가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 아이가 만족하는 것 같아서 좋아하지만, 여기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유형과 달리 부모의 마음에 불만과 불평이 쌓인다. 부모의 생각과 뜻이 있는데, 항상 자녀의 말을 들어주니 자연스럽게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부모가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된다.

자녀들은 항상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받아주는 경험을 하다가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받게 되면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자녀는 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성장한다. 부모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패자형’ 부모는 자신이 자녀의 생각대로 모두 받아주면서 자신은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방적인 욕구를 채워줄 뿐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패자형 부모에게 참 슬픈 것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가 자녀와 함께 있는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와 떨어질 때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된다.

아이를 위한다고 하면서 결국에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버거워한다. 요즘 이런 유형의 부모가 참 많다. 아이랑 함께 있는 게 싫어서 직장을 다니거나 집에 있으면서 학원이나 돌봄에 보내는 엄마들도 많다.

동요형 부모는 스스로도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 자녀들도 문제를 가질 가능성이 가장 높기도 하다. 동요형 부모는 같은 상황에서 어떤 때는 권위적이다가도 어떤 때는 자녀의 생각을 들어준다. 부모는 자녀와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모가 일관되지 않기 때문에 아이의 입장에서는 혼란을 겪게 된다.

자녀 입장에서 동요형 부모는 정말 힘들다. 자녀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부모에게 동일한 요구를 하다가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전에는 이렇게 하면 됐는데, 오늘은 왜 그러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자녀들은 자신의 말대로 따라주는 부모를 보면서도 언제 어떻게 권위적으로 변할지 모를 상황을 대비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권위적인 부모 밑에 있는 아이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거기에다가 부모의 이중성에 신뢰나 믿음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부모와 자녀가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이런 경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한다.

패자형 부모와 동요형 부모, 그리고 승자형 부모 역시 모두 자녀를 위한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통의 원인이 된다. 양육에 정답은 없지만, 자녀와 소통하지 못한 양육은 그 어떤 것도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

배태훈 다함께연구소 소장, 아동청소년상담심리 허그맘 자문위원


▶배태훈(다함께연구소장)= 다음세대인 자녀와 부모가 모두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꿈을 꾼다. 다음세대 전문 사역자로 ‘다함께연구소(다음세대와 함께하는 연구소)’를 설립하여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자녀교육, 부모교육, 부부교육 등을 연구하고 강의를 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심리센터 HugMom 자문위원 및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일기동화'(가이드포스트, 공저, 2017)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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