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인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사진=도서출판 노마드]


[나눔경제뉴스=최유나기자] 2000년전 쓰여진 책 속의 괴물과 동물들의 이야기가 현대의 판타지 문학과 영화 그리고 온라인 게임에도 큰 영향을 준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국내 최초로 생명존중시민회의 서경주 공동대표(도서출판 노마드)에 의해 번역 출간됐다.

박물지(博物志)는 ‘동물, 식물, 광물, 지질 따위의 사물이나 현상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책’이란 뜻이다.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동물지'(Historia Animalium)가 박물지 성격을 띤 원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박물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최초의 저작이다.

플리니우스의 저작 이외에도 중국 서진(西晉)의 문장가이자 시인인 장화(張華)가 엮은 '박물지(博物志)'(전 10권), 프랑스의 박물학자 뷔퐁의 '왕실박물관의 해설을 통한 박물지, 총론 및 각론(전 44권)이 ‘박물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플리니우스의 저작들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전해지는 박물지(전 37권)는 그의 마지막 저작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로마 시대의 방대한 단일 저작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대의 지식을 총망라하고 있는 이 저작의 주제 영역은 오늘날 자연사(natural history)로 이해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몇 년 후 베스파시아누스에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될 티투스에게 헌정한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플리니우스는 문학적 형태로 자연 세계를 재창조하고자 했다. 각 항목을 독립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자연 전체의 한 부분으로 서술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관심사가 ‘자연 풍경에서의 인간 삶’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구성 요소들을 그 자체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에서의 역할에 대한 관점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다루는 범위는 백과사전식이지만, 구조는 현대의 백과사전과는 다르다.

더구나 '박물지'에 수록된 온갖 기이한 이야기와 로마의 경계 너머에 사는 다양한 인종에 관한 이야기는 로마 중심적인 세계관과 정치 질서를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다.

▶AD 77년 첫 출판···고전 문화의 정수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77년에 처음 10권이 출판되었다. 나머지는 사후에 조카인 소(小)플리니우스가 출판한 것으로 추정된다.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천문학, 수학, 지리학, 민족학, 인류학, 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학, 약학, 광물학, 조각작품, 예술 및 보석 등과 관련된 약 2만 개의 항목을 많은 문헌을 참조해 상세하게 기술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풍속적 설명과 이용 방식 등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저작은 구체적인 사물에 관한 단순한 지식을 뛰어넘어 고대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쓰이고 있다.

박물지는 상당히 인기를 끌어 로마 시대부터 중세까지 여러 차례 전체 내용이 그대로 필사되었고, 베니스에서 첫 인쇄본이 출간되었다.

이후 박물지가 보여준 광범위한 주제, 원작자에 대한 언급, 색인 등의 구조는 백과사전 및 학술적 논저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중세 이후의 괴물과 상상 동물 이야기, 현대의 판타지 문학과 영화 그리고 온라인 게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검증해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알려진 수많은 글과 책을 참조해서 기술한 것이다. 또한 괴물, 거인, 늑대인간 등 비과학적 내용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학문적 체계를 완전히 갖춘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특히 르네상스기인 15세기에 활판인쇄로 간행된 이후 유럽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은 이 책을 애독하고 인용했다. 박물지는 과학사와 기술사에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예술에 대한 자료로서 미술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였다.

특히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예술에 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서적은 사실상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유일하다.

이번에 도서출판 노마드에서 펴낸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번역되는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로, 미국의 버클리 고등학교 교장인 존 화이트가 교양인과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도록 편집한 '청소년을 위한 플리니우스(The Boys’and Girls’Pliny)(1885, 전 9권)를 텍스트로 삼았다.

▶저자 플리니우스에 대하여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23~79)는 로마인이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코모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로마로 가서 이집트 문법학자인 아피온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는 아프리카, 이집트, 그리스 등을 여행하며 헤로도토스 같은 유명한 여행가가 되었다. 스물세 살 때 게르마니아로 파견되어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휘하에서 군 복무를 하며 그의 총애를 받아 기병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로마로 돌아와 법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갈망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져서 법률 공부를 그만두고, 그가 잘 아는 폼포니우스의 생애와 게르마니아 전쟁의 역사를 저술하는 데 착수했다.

그가 쓴 '게르마니아 전쟁사(Bella Germaniae) 는 모두 20권 이었다. 현재 한 권도 전하지 않는다. 네로 황제 치하에서 플리니우스는 히스파니아(에스파냐) 동남부 해안 근처의 행정장관이자 징세관에 임명되었다.

그가 그곳에서 근무하던 70년, 매제 루키우스 카이킬루스 킬로는 나중에 '서한집'(Epistulae)의 저자이자 법률가로 명성을 떨친 열 살 된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해 플리니우스는 임지에서 돌아오자마자 조카를 입양했다. 우리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조카(그를 소플리니우스로 부르기도 한다) 덕분이다.

플리니우스는 베수비오 화산이 마주보이는 항구 미세눔(지금의 미세노)의 해군기지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중 79년 8월 24일과 25일에 걸친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실종되었거나 조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세기 폼페이에서 발견된 유골 중에 플리니우스의 유골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