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가입국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브루나이이다. 동티모르는 가입 희망을 표명하고 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가장 최근에 말레이시아를 다녀온 때는 세계가 코비드-19 판데믹으로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귀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국내에서 방역조치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판데믹 발생 소식이 나오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에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서야 안심이 되었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 인도인, 중국 화교를 위시로 구성된 다민족 사회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된 연방제 국가로 총리의 역할이 크지만 국가원수는 9개 지역의 통치자가 교대로 담당하는 입헌군주제 정치체제다.

나라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국가 구성원 간의 원활한 협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 개별 민족이 각각의 입장만 고수하고 양보와 절충이 없다면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하거나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

동남아를 여행할 때 처음 느끼는 기분은 부드러움이다. 태국 항공사의 선전문구 ‘비단처럼 부드러운(Smooth as Silk)’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딱딱한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사철 더운 날씨와 풍부한 식량과 과일 생산이 주는 의식주의 호조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 국가들에는 부드러운 비단 속에 감춰진 크리스 전통 칼 같은 매서운 점이 있다. 수천 년 이어 온 민족국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강한 반감을 얻게 된다.

동남아에 살아 본 외국인들은 이들 사회의 감춰진 외유내강(外柔內剛)의 힘에 공감한다.

수십 년에 걸친 베트남의 독립전쟁이나 수백만 명이 학살당한 킬링필드를 경험한 캄보디아를 보면 더욱 이러한 강고함을 알 수 있다. 약 350년간 지속된 네덜란드의 식민통치가 끝난 후 인도네시아에서 장기간 벌어졌던 정부군과 공산당 반군 간의 무장투쟁도 마찬가지였다.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단일공동체를 표방하지만 회원국 간의 국력 차이와 역사문화적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베트남과 인접 국가들이 겪었던 정치와 군사 분쟁도 그중 하나다. 미얀마와 태국 그리고 캄보디아 간의 갈등도 존재한다. 따라서 아세안 국가 간에는 협력과 견제가 중첩된 다중관계가 존재한다.

동남아에는 전통세력인 중국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진출한 일본 간의 영향력 다툼이 있다.

그리고 21세기에는 한국이 주요 협력파트너로 부상해 경제와 문화 그리고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아세안 시장은 우리 기업이 비교우위를 가진 시장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협력은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이들 국가 간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