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유명한 '역사철학 강의'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담론 주제가 된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19세기 초반 독일 역사학자의 민족주의는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가 되어 점차 극단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를 제압하면서 얻은 자신감은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추동력이 되었다. 여기에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으로 역사의 발전이론으로 제시한 헤겔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헤겔은 1822부터 1831년 중에 베를린 대학에서 역사철학 강의를 했다. 그리고 독일의 민족국가 탄생을 인류 역사가 최고로 발달한 단계로 보았다. 게르만 민족 국가를 역사 발전의 마지막 단계라고 규정하면서 세계사를 다음과 같은 4단계로 설명했다.

첫째로, 역사의 유년기는 동양으로 이 세계의 밑바탕에 있는 것은 공동체 정신이라는 소박한 의식이다. 개인의 주관적 의사는 이 정신을 믿고 복종하는 것이다. 백성들의 자유의사가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역사의 시작은 동양이지만 피동적으로 유아기적이다.

둘째로, 청년기에 해당하는 것은 그리스 세계다. 개인이 형성되는 시대로 이것이 세계사의 두 번째 근본원리다. 공동감정이 아시아의 원리라고 한다면 그리스에서는 개인이 부각되고 개인의 자유의사에 근거한 공동정신이다. 여기에는 공동감정과 주관적 의사가 통일되어 조화로운 자유왕국이 완성되어 있다.

셋째로, 추상적인 공동원리에 기초한 로마제국이 역사의 장년기다. 국가가 하나의 목적으로 추상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자기를 버려야 하지만 그 대신에 일반적인 인격성을 획득한다.

세계사의 네 번째 단계로, 게르만 세계는 인생으로 보면 노년기다. 완전한 성숙의 시기이고 정신은 이 성숙 안에서 정신적 통일을 이룬다. 게르만 세계는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화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헤겔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반론도 많다. 그중에는 세계사를 4단계로만 볼 것인지. 게르만 세계가 세계사의 노년기로 마지막 단계가 되는지와 같은 질문이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앵글로 색슨 민족의 위치에 대한 질문도 있다.

20세기 들어 세계는 헤겔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나치 독일이 하등민족으로 보았던 러시아가 부상했다.

과도한 민족주의에 몰입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독일은 제1, 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되었고 전쟁에서 패했다. 이것을 헤겔의 세계관으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서 흥미로운 담론 주제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