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삼성 창업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타계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계 10대경제대국으로 견인해온 대기업 창업1세대들이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볼 수 없어도 그들의 불굴의 의지와 기업가정신은 100년이 흘렀어도 생생하다.
한국기업의 역사가 백년을 넘으면서 기업오너 3·4세 시대가 열렸다. 심지어 5세까지 이어지는 기업들도 나온다. 이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해외유학 등을 통해 전문적인 경영지식도 쌓았다. 젊은 감각으로 뉴패러다임에 맞게 신사업을 추진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과거 창업 회장들에 비해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본지에서는 2020년 신년특별기획으로 오늘날 귀감이 될 내용을 옛 성현에게서 배우듯, 창업회장들의 경영어록에서 그들이 보여주었던 혼신의 노력과 사업보국의 뜨거운 열정을 조명해보는 특별기획시리즈를 준비했다.[편집자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2)
[나눔경제뉴스=차석록 편집국장] "나라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캄보디아,베트남의 말로를 보아라. 나라가 부강해야 기업도 잘될 수 있다. 나는 항상 나라 걱정을 하면서 삼성을 경영해왔다."
이병철 회장이 지난 1981년 10월 사장단을 모아놓고 한 용인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병철회장은 평소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강조해왔다.
이병철회장이 삼성(三星)이라는 사명을 지은 이야기가 있다. "삼(三)은 크고 많고 강하다는 뜻이며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지.성(星)은 밝고 높고 깨끗이 빛나며 또 영원한 그 무엇이야. 이런 바람을 담은 이름이야."
그런 이회장이 6.25 전쟁직후 제당사업에 뛰어들 당시 사명을 제일제당으로 지었다. 현재 CJ제일제당이다. 알기 쉽고 부르기 쉽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슨 일에나 제일의 기개로 임하자는 뜻이 담겨져 있다. 특히 경제계의 제일주자로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크게 기여해 나가자는 결의가 담겨 있다.
삼성은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해 전자부품의 국산화와 수출에 나서는등 사업보국의 길을 걷고 있다.
1980년대 삼성은 한국경제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다. 반도체산업 진출이다.83년 64KD램 개발성공을 시작으로, 94년 세계최초의 256MD램,96년 역시 세계최초의 1기가D램 개발 등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특히 현재 삼성전자는 2019년 매출 230조원, 올해는 25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고용인원이 10만명이 넘고,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전자기업으로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
◆이병철회장은 누구 :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호암(湖巖). 경상남도 의령 출생이다. 아버지 이찬우(李纘雨)와 어머니 권재림(權在林)의 2남 2녀 중 막내이다.
1922년 지수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수송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중동학교를 거쳐 1930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경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수학중 심한 각기병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29년 박두을(朴杜乙)여사와 결혼했다.
1936년 첫사업으로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운영했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三星商會)를 설립, 1941년 주식회사로 개편해 오늘의 삼성 출발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