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三星商會)를 설립해 삼성그룹을 일구어냈다. (왼쪽부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타계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계 10대경제대국으로 견인해온 대기업 창업1세대들이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볼 수 없어도 그들의 불굴의 의지와 기업가정신은 100년이 흘렀어도 생생하다.

한국기업의 역사가 백년을 넘으면서 기업오너 3·4세 시대가 열렸다. 심지어 5세까지 이어지는 기업들도 나온다. 이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해외유학 등을 통해 전문적인 경영지식도 쌓았다. 젊은 감각으로 뉴패러다임에 맞게 신사업을 추진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과거 창업 회장들에 비해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본지에서는 2020년 신년특별기획으로 오늘날 귀감이 될 내용을 옛 성현에게서 배우듯, 창업회장들의 경영어록에서 그들이 보여주었던 혼신의 노력과 사업보국의 뜨거운 열정을 조명해보는 특별기획시리즈를 준비했다.[편집자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1)

[나눔경제뉴스=차석록 편집국장] "삼성은 인재의 보고라는 말보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없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지난 1982년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기념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회장은 이보다 12년이나 앞선 1970년 합동참모대학 강연에서 "국가의 발전이 탁월한 정치인에게 달렸다면 기업의 발전은 유능한 경영자에게 달려 있다. 삼성의 발전 원인도 남보다 유능한 인재를 많이 기용한 결과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경영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이다.

이병철 삼성회장이 사장단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회장의 인재제일주의는 인간을 존중하는 여건을 만들어 그로 하여금 개인과 사회의 원동력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같은 이회장의 경영철학은 혈연이나 지연, 학벌에 관계없이 숨어 있는 인재를 찾는 삼성의 변함없는 인재경영의 근간이 되고 있다. 삼성은 사원공개채용제도를 가장 먼저 실천하고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했다.

이병철회장은 회사에 아무리 중용한 일이 있어도 신입사원 면접 만큼은 빠지는 일이 없었다. 특히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지난 1982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은 50억원을 투자해 삼성종합연수원을 준공했다.

이병철회장의 인재경영에 대한 숨겨진 일화가 있다. 삼성전자가 중앙연산장치(CPU)를 개발할때 담당 상무가 당시로서는 거액인 1000만원을 투자해 개발성공을 자신하지 못하자 "당신은 상무요. 그정도 실패할 권리는 주어져 있는거요. 그정도의 모험도 할 수 없는 인물을 나는 상무로 앉힌 기억이 없다"고 호통을 쳤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가'가 이병철회장의 인재 평가 기준 가운데 하나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라는 삼성의 신상필벌 경영원칙으로 이어졌다.

이병철회장의 인재에 대한 애착은 오늘 삼성그룹 발전의 혈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남이 아닌 3남인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받은 이유도 이 회장의 인재경영 일환인 셈이다. 가장 경영을 잘할 능력을 갖춘 세째아들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시킨 것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생산공장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은 3남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삼성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꾼 프랑크푸르트선언을 단행했다. 당시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라는 품질혁신경영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핵심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선언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강연이었다. 모두 4회에 걸쳐 200여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93년 6월 13일부터 14일까지 4차례에 걸쳐 실시한 강연내용이 프랑크푸르트선언이다.
첫강연은 93년6월13일 프랑크푸르트 에쉬본의 삼성유럽총본부에서부터 시작해 캠핀스키 호텔에서 끝이 난다.

아쨌든 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푸르트선언 10주년을 기념하는 2003년 6월 제2 신경영의 핵심인 '천재경영론'을 선언하게 된다. 그는 21세기는 1등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1등기업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게 된다며 천재 1명이 만명,십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천재경영론으로 이어졌다.

◆이병철회장은 누구 :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호암(湖巖). 경상남도 의령 출생이다. 아버지 이찬우(李纘雨)와 어머니 권재림(權在林)의 2남 2녀 중 막내이다.

1922년 지수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수송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중동학교를 거쳐 1930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경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수학중 심한 각기병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29년 박두을(朴杜乙)여사와 결혼했다.

1936년 첫사업으로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운영했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三星商會)를 설립, 1941년 주식회사로 개편해 오늘의 삼성 출발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