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시민회의, 안실련, 자살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한국생명운동연대, 한국종교인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들이 8월 5일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자살대책위원회 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식 제기했다.[사진=생명존중시민회의]


[나눔경제뉴스=최유나 기자] 자살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라는 오명을 극복하기 위해 ‘자살대책위원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3.2명으로 OECD 평균 10.7명의 두 배가 넘는다.

생명존중시민회의, 안실련, 자살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한국생명운동연대, 한국종교인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들이 5일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자살대책위원회 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식 제기하며,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 컨트롤타워 설치를 위한 입법 초안을 처음 공개했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임삼진 생명존중시민회의 상임이사는 “20년 연속 OECD 자살률 1 위, 2021년 기준 세계 4위의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25.8명)은 국가적 수치”라며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 재난”이라고 밝혔다.

임 상임이사는 “지난 2004년 이후 4차에 걸쳐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세워 자살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목표 달성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 "기본계획이 누락된 시기도 있고, 목표와 실제의 간극이 심한데도 국정 책임자나 주무장관의 사과 단 한 번도 없었다” 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 법으로 만들자”

새롭게 제안된 ‘자살대책위원회법’은 기존 법령과 달리 대통령 직속의 강력한 정책 조정기구 설치를 핵심으로 한다. 단순 자문이나 협의기구가 아니라, “관계 부처와 지방 정부에 기속력 있는 권고와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자는 것이다.

위원회는 정부와 기업, 종교계, 전문가, 자살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민관 생명 거버넌스 플랫폼 형태로 운영되며, 자살대책의 수립, 집행 점검 등 포괄적 역할을 수행하게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교체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독립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로 명확한 설치·운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5개 시민단체가 주도, 입법 초안도 완성"

이번 법안 추진은 생명존중시민회의, 안실련, 자살유가족과따뜻한친구들, 한국생명운동 연대, 한국종교인연대 등 5개 단체가 구성한 ‘자살대책위원회법제정추진위원회(위원장 박인주 나눔국민운동본부 이사장)’가 주도했다.

지난 6월 중순부터 다섯 차례의 집행 위원회를 거쳐 기초안을 만들고 법조인들과 국회 입법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총 20 개 조문과 부칙 2개를 담은 법률 초안을 완성했다.

이 초안에 따르면 자살대책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되며, 연 6회 이상의 회의 개최, 반기별 대통령 보고, 지방정부 이행 점검 및 권고권한을 갖는다.

또한 인권 보 호, 편견 방지, 개인정보 보호 조항도 명시되어 있다. 위원회 구성에는 정부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 종교계, 유가족 단체가 함께 참여해 정 책의 실효성과 수용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자살예방기본계획 목표와 실제 자살률. 그 간극이 컸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그래픽=생명존중시민회의]


“여당 다수, 대통령 의지도 확고… 입법 실현 가능성 충분” -

추진위는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여당이 다수당일 뿐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 역시 생명존중정책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임삼진 상임이사는 “대통령령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예산 확보나 지방정부에 대한 기속력이 떨어진다”며 “이제는 말이 아닌 법, 선언이 아닌 구조, 마음이 아닌 실행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자살은 국가적 재난이자 비상사태, 구조변화 시급

이날 토론회에서 '자살유가족과 따뜻한친구들' 김혜정 대표는 “자살 유가족은 자살 위험군 1순위다"면서 " 실업, 고립, 빈곤, 폭력, 가족 해체 등 자살의 근본 원인은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며, 유가족은 이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그럼에도 사회는 유가족에게 침묵과 낙인만을 강요한다"면서 "이제는 유가족이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실련 자살예방센터 양두석 센터장은 “매일 40명이 자살로 사망하고, 800명이 시도하는 현실은 국가적 비상사태다"면서 "현재 보건복지부 중심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학생은 교육부, 군인은 국방부, 직장인은 고용노동부 등 흩어져 있다"고 말했다.

양센터장은 "일본은 시민사회의 힘으로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총리실 주도로 부처 연계를 통해 10년간 자살률을 37% 줄였다"면서 "한국도 대통령실에 범부처 자살대책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심리학과 현명호 교수는 “정부는 응급실 기반 사후관리사업, 게이트키퍼 양성 등 여러 예방 활동을 펼쳐왔으나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 최상위다"면서 "노인 자살은 여전히 높은 수치를 보이며, 군에서는 초급장교·부사관의 자살이 늘고 있는데, 사회적 고립, 경제적 압박, 조직 내 스트레스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한국종교인연대 김대선 상임대표는 “20년 넘게 1위를 기록한 한국의 자살률을 ‘익숙해져선 안 될 심각한 불명예’”라며 “자살대책위원회법 제정으로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위원회를 즉각 설치 하여 국가가 생명존중의 기본가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나눔국민운동본부 박인주 이사장은 “자살 문제가 가진 사회적 구조적 측면을 고려할 때 내몰리는 죽음을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결국 자살 문제는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의식과 해결 의지에 달려 있으며,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살 사망자 수 전년 대비 증감률(%). 정치적 갈등 고조기에 자살률 치솟았다.[그래픽=생명존중시민회의]


"자살예방 정책, 한계 분명… 이젠 ‘대책’으로 전환할 때"

우리나라에도 지난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으로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운영되어 왔지만, 자살 감소라는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임 이사는 “보건복지부 중심의 자살 예방 정책은 부처 간 조정력과 실행력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교육부, 고용노동 부, 경찰청, 행정안전부 및 지자체의 유기적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경제·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자살이 2023년 한 해에만 3,656건(전체 자살 의 25.9%)”에 달했다며 “대부분의 자살은 정신질환에 기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책 실패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살률이 폭증했던 시기(2009, 2018, 2023)가 모두 정치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는 점도 언급하며, “이제는 자살의 현실에 정 면으로 맞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