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2021년 회의에서 “대체투자에 관한 ESG 책임투자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단순한 수익률 논리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이미지=나눔경제뉴스]


[나눔경제뉴스=이창희 편집위원] 한국 금융산업은 지금 ESG라는 거대한 전환의 물결 위에 서 있다.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고려하지 않는 금융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 금융시장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선언적 구호만으로는 실질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규제기관의 의지와 감독의 방향성이 금융회사의 행동을 바꾸고, 그 결과가 투자자와 소비자,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신뢰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최근 금융감독원장으로 취임한 이찬진 원장의 ESG 철학은 주목할 만하다.

이 원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ESG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발언을 남겼다.

그는 2021년 회의에서 “대체투자에 관한 ESG 책임투자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단순한 수익률 논리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특히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구조조정 방식을 비판하면서, “인수와 재매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과 지배구조 개선은 뒷전으로 밀린다”고 지적했다.

이는 ESG가 단순히 환경 친화적 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용·노동·지배구조 전반을 포괄해야 한다는 철학을 보여준다.

그의 ESG 철학의 핵심은 ‘사전 필터링’에 있다. 기업이나 투자대상이 ESG 원칙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사후적으로 문제를 바로잡기보다 애초에 진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감독당국자의 시각에서도 유효하다. 사후 제재만으로는 소비자 피해와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어렵다. 따라서 제도 설계 단계에서 ESG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감독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2025년 금융감독원장에 취임한 이후 이 원장은 보험업계를 대상으로 ESG적 관점을 더욱 뚜 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보험의 본질은 소비자 보호”라며 상품 설계부터 판매, 내부통제 전 과정에 소비자 중심 원칙을 내재화할 것을 주문했다.

ESG의 S와 G가 결합된 이 발언은 단순히 친환경 투자 확대를 넘어, 사회적 신뢰와 지배구조 투명성을 금융의 본령으로 삼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보험사들에 대해 생산적 금융과 ESG 연계 투자를 요청했다. SOC, 첨단산업 등 장 기적 성장 기반에 자금을 공급하면서도 ESG 기준을 접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 이익보다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투자 철학으로, 국민연금에서의 책임투자 논리를 금융 전체로 확장한 셈이다. 아울러 취약계층 대상 포용금융 확대를 주문한 대목은, ESG의 S(사회적 가치) 실현을 금융이 직접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이 원장의 철학은 감독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불완전판매, 내부통제 미비, 회계 불투명성 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다. 이는 ESG의 G, 즉 지배구조 차원에서 기업의 도덕적 해이 를 근본적으로 제어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생명 회계 문제를 “더 이상 시간 끌지 않고 원칙대로 정리리하겠다”고 밝힌 것은, ESG 철학을 실무에 관철하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그렇다고 그의 ESG 철학이 규제 일변도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확대를 요구하는 동시에, 금융회사가 스스로 지속가능성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규제와 육성, 감독과 혁신을 조화시키려는 균형적 접근이다.

ESG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그의 시각은, 한국 금융산업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는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결국 이찬진 원장의 ESG 철학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책임 없는 성장은 없다.”

국민연금에서의 경험, 그리고 금감원 수장으로서의 행보 모두 이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 금융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소비자에게 진정한 보호 장치가 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여부는 이 원장이 제시한 ESG 철학이 얼마나 일관되게 실현되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