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동학개미와 '벼락거지'

전채리 승인 2021.01.15 18:10 의견 0
전채리기자


[나눔경제뉴스=전채리기자] 요즘 안부를 주고 받는 사람들마다 공통적인 화제는 '돈'이다. 40~50대는 집값, 20~30대는 '주식투자'가 빠지지 않는 핫이슈다.

온라인 재테크 커뮤니티에는 "어느 주식이 좋다"는 글과 높은 수익률을 인증하는 사진이 쏟아진다. 심지어 '삼성전자 주식을 산 주린이(주식초보자)들의 현황'이라는 게시물도 눈에 띈다.

경제 매체 기자로 일하다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질문은 "어떤 종목을 사야 하냐", "삼성전자는 지금이라도 사야 할까", "주식은 어떻게 시작하는거냐", "비트코인은 어떠냐" 등 주로 투자관련이다.

올들어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 자금은 20조원에 육박한다.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8거래일동안 국내 주식 시장에서 10조8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주식 매수를 위한 대기 자금도 9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금융투자업계와 언론에서는 외국인투자자들의 빈자리를 채운 개인 투자자들을 두고 '동학개미의 승리'라고 연일 찬사를 보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미들의 자축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뜨거운 열풍이 지나가는 자리는 어떠한가. 지난해 가계대출은 전년 대비 100조원 이상 늘었다.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현상에 코로나19에 따른 생계자금 수요가 폭발한 탓이다.

15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증시 상황을 두고 "빚투로 투자할 경우 가격 조정에 따라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경고했다.

또 오는 3월 중순 공매도가 재개되면 주가 하락에 따른 불안감도 크다.

하지만 뒤늦게 투자대열에 뛰어들어 돈 맛을 본 주린이들이 쉽게 빠져나오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제는 저축만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숨만 쉬고 월급을 모아도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아파트 한 채를 사는데 14년이 걸린다는 조사 결과를 냈다. 집값은 눈뜨고 일어나면 오르고 있지만, 금리는 사실상 제로다.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시대'다.

출입처 50대 부장님은 "이제 숨만 쉬고 살아도 집을 살 수 없다"는 나의 푸념에 "숨만 쉬면 살 수 있어요! 저는 정말 숨만 쉬고 모아서 샀어요"라고 답했다.

그분이 지금의 내나이였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직후 국내 은행들의 1년제 정기예금 금리는 연 18%를 웃돌았다. 지금은 제로금리다.

자산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주식으로 대박을 터트려 단숨에 '벼락부자'가 되거나 '영끌'한 집이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반면 착실히 저축만 한 무주택자는 '벼락거지'가 됐다.

이 때문에 최근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하는등 연일 신기록을 갈아치우자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하거나 주식투자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생 선배인 40~50대는 2030 개미들의 영끌, 빚투를 '무모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후배이고 자식 같은 이들이 왜 그렇게 무모한 투자에 나섰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비난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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