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자영업자를 괴물로 만들었나

전채리 승인 2020.12.01 17:07 의견 0
전채리기자


[나눔경제뉴스=전채리기자] "인원에 관계없이 와인 두 병을 시켜야 합니다." 친구들과 가끔 찾는 동네 와인바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공지다.

거리두기 2단계로 한 팀만 예약을 받고 있고 그래서 테이블당 와인을 두병 주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곳은 최대 5명이 앉을 수 있는 원 테이블로 운영되는 매장이다. 때문에 코로나19 이전에도 하루 두 팀만 예약을 받았다.

얼핏 보면 손님의 안전을 위해 한 팀만 받을 테니 최소 주문액을 인상한다는 내용이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매장 규모가 협소해 테이블 간 1m 거리두기가 불가능해 한 팀만 예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싼 와인도 가격이 병당 7-8만원선이다.

이 와인바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곳도 아니다. 매번 '이번 달 예약은 마감되었습니다', 'XX일 예약 취소로 인해 추가 예약 받습니다' 등의 공지가 올라오는 핫플레이스다.

우리 일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평소 같으면 추위를 피해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즐기거나 연말 모임에 참석해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외식 대신 배달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자영업자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손님은 끊기고 매출이 급감하면서 인건비는 물론 임대료를 내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정부는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을 위한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검토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서울 휴게음식점의 연간 폐업률은 2016년 49.1%, 2017년 56.9%, 2018년 63.3%로 증가했고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 1분기에는 66.8%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폐업률은 70%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찌감치 배달 서비스로 물론 살아남은 자영업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이런 가운데 이 와인바처럼 꼼수를 부리는 곳이 적지 않다. 지난달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카페에서는 매장을 이용할 수 없고 포장·배달만 가능하다는 발표가 나온 바로 다음날 일명 '브런치 카페'들은 너도나도 매장 이용이 가능하다며 홍보했다. 브런치 카페는 '식당'으로 분류되어 매장 내 취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논란이 일자 뒤늦게 정부는 브런치 카페나 베이커리 카페 등에 대해서도 커피·음료·디저트류는 포장과 배달만 허용하며 식사를 할 경우에만 매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기준이 애매하다 보니 지난주에는 '테이크아웃만 가능'이라고 공지하던 카페도 '식사 시 매장 이용 가능'이라고 입장을 바꾸고 있다. 브런치 메뉴를 추가해 편법을 쓰는 모습이다.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영업을 안 하는 게 바보", "꼼수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의견과 "매출을 떠나 편법을 쓰는 곳을 보니 힘이 쫙 빠진다", "어설픈 규제 지키려다 나만 굶어죽게 생겼다" 등의 의견이 분분했다.

자영업자는 정부를 탓하고, 정부는 개인 방역을 당부한다. 누군가는 중국을, 누군가는 신천지를, 또 누군가는 남의 탓을 하는 사이 누군가는 괴물이 되는 건 아닐까.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꼭 한 번은 가봐야지 맘먹었던 카페 주인의 글이 계속 맴돈다.

"편법을 쓸 수도 있었지만 모두가 힘든 시기에 자칫 동료 사장님들의 의욕을 꺾거나 눈앞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마음을 이기적으로 먹으면 어떻게든 해 볼 수는 있지만 그래도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는 말 잘 듣는 어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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